불혹을 맞아 발표된 양희은의 음악 인생 20주년 기념 작이다. 프로젝트 듀오 어떤날과 솔로 작품들을 통해 주목 받았던 이병우와 협업했으며 중년에 접어든 베테랑과 당시 26세이던 젊은 뮤지션의 바람직한 시너지가 앨범을 장식했다.
눈 오는 어느 겨울 밤, 문득 지난 사랑을 차분하게 회상하는 "그 해 겨울", 돌이킬 수 없는 시절을 추억하는 "그리운 친구에게", 이병우의 곡들로 양희은 특유의 초연한 음성이 그득한 "11月 그 저녁에"와 고즈넉한 추억 속 동네 풍경을 회상하는 "가을 아침"에서 단출한 어쿠스틱 기타와 푸근한 목소리의 부둥킴이 훈훈하다. 이어서 앨범의 중심 트랙이자 (그 어떤 곡도 원곡의 감성을 넘어서지 못한) 수 많은 리메이크 버전이 양산된 "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"와 푸르고 청아한 "나무와 아이", 소설 '어린 왕자'의 내용을 읊조리는 "잠들기 바로 전"에서 그의 보컬은 최상의 집중력과 설득력으로 듣는 이의 주목도를 최상으로 이끌어낸다.
[양희은 1991]은 그와 한국 포크의 건재함을 다시금 증명한 작품이었다. 암 수술과 시한부 판정, 투병생활을 이겨내며 체득한 양희은의 무덤덤한 독백이 시작부터 끝까지 앨범을 이끌며, 외로운 여행인 '인생'과 '삶'에 대한 아티스트의 관조적 시선이 드러나있다. 앨범의 전체 분위기인 쓸쓸함이 마냥 차갑지 않은 건 양희은의 음성에서 묻어나는 천성적 온기가 함께 해서 일 것이다. 깔끔하고 정갈하다. LP 앨범 자켓 뒷면에 언급된 이병우 의도가 앨범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. 거목과 특출한 음악인이 함께 자아낸 작품은 '편안함',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.